사랑(戀)을 하는데 있어 상대의 성별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범성애자(汎性愛者, Pansexual)이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범성애에 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고, 잘못된 정보도 쉽게 보인다. 내가 범성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범성애의 중요한 특징인 Gender blind가 무성애와 조금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범성애는 간단하게 모든 성을 사랑할 수 있는 성향이라고 말해지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성애자가 모든 이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듯 범성애자도 아무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범성애의 중요한 점은 성별을 의식하지 않는다(Gender blind)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은 사람에 한한다는 것이다.

 

 여자도 좋아할 수 있고 남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성애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양성애가 상대방의 성별을 의식한다는 점에서 범성애와는 기본 개념이 전혀 다르다. 그 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성별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 그외 다른 성에도 끌림을 느끼는 것은 다성애(Polysexuality)라고 말한다. 양성애나 다성애와 달리 범성애는 상대의 gender를 의식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

 

 평생동안 끌림을 느낀 대상이 모두 한가지 성별을 가졌다해도 그가 상대의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그 남자(여자)"가 아닌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라면 그는 범성애자일지도 모른다.

 

 범성애에 관해 흔히 볼 수 있는 정보 중 하나는 극단적인 범성애자는 동물 혹은 무생물에게까지 사랑을 느낀다는 정보인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범성애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며 동물에게 성애를 느끼는 것은 Zoophilia라는 용어가 있으며 무생물에 성애를 느끼는 건 Fetishism의 일종으로 봐야한다.

 

범성애를 상징하는 깃발(Pansexual Pride flag)

분홍색은 여성, 파란색은 남성, 그 사이의 노랑색은 성별이분법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성별들을 나타낸다.

 

 

 우리말로는 성맹(性盲)이라고 옮겨지는 Gender blind는 성별을 볼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보고도 성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Gender blind인 사람들은 성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성별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많은 요소 중 하나로 여긴다.

 범성애를 말할 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고 설명한 것은 "젠더블라인드로 상대를 보고 사랑한다"는 의미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일 뿐, 다른 성적 지향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범성애에서 유성애적인 요소를 빼면 무성애의 사랑(戀)인 범성로맨틱(Panromantic)이 된다, -그 성질이 다른만큼 분명 다른 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점만 보면 그렇다.


 흥미롭게도 많은 무성애자들에게서 사람의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사람으로 보는 Gender blind적인 시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로맨틱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맨틱을 느끼는 무성애자들 중에는 범성로맨틱의 비율이 높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이성이나 동성 로맨틱 등이라고 생각하는 무성애자들 중에도 분명 로맨틱의 대상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Gender blind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성향을 정확하게 용어로 표현하고 정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정의하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이런 개념들을 앎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머릿속을 떠돌던 무수한 조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상적인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것, 곁에는 아무도 없다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공감해줄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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