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무로맨틱들은 연애 이야기가 싫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나도 연애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애감정에 관한 이야기는 꽤 좋아한다.
특히 '그 감정은 어떤 느낌인가?' 혹은 '그 감정으로 인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정말 흥미롭고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모르는 특정 감정이 어떤 감각인지 유추해 보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식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려하지 않는다. 아마도 말하기 부끄럽거나 내가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자신의 경험담이나 생각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의 다정함에 감사하며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아, 그런 느낌이구나. 엄청난 감정이네? 이야기를 들으니까 뭔가 알 것 같기도 해.'
라고 생각하며 머릿속에 넣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려지겠지.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깨닫는 그 순간들이 내게는 무척 의미가 있다.
사람들과 연애감정이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는 적당한 선에서 나를 감추며 드러낸다. 완벽하게 감추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히 드러내는 편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 좋다. 신기하게도 무성애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말을 아무리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퀴어일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성애와 무로맨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릴 때도 있다.
그런 날에는 문득 잊고 있었던 사실-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면서 문득 쓸쓸함이 밀려온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에게 떼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존재가 지워지는 게 더욱 쓸쓸해져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이 중에 정말 아무도 없나?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와 같은 에이든 이런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든 그저 나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든.
연애나 결혼을 바란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미래에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무척 쓸쓸하다. 사람들에게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결혼 안 한다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한다"라든가 "응, 안 믿어."라며 진지하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연애나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우리끼리 놀자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건 다 빈말이었다.
그래서 그럴 줄은 몰랐는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가 결혼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내 말에 웃으며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그럼 나도 하지 말아야지."
라는 그 한 마디가 무척 위로가 되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내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내 편에 서 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분위기에 편승해 '안 믿는다'며 웃어넘겼다(그 사람은 에이로가 아니니까). 그 말을 긍정하는 순간 정말 의미있는 한 마디로 돌아올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난 그 순간을 꽤나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요즘 나는 내가 퀴어인 걸 잊고 있었다. 아니, 잊었다기 보다는 그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떠올랐다. 나의 존재를 마주하는 건 조금은 쓸쓸하지만 무척 따뜻한 느낌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블로그에 뭐라도 끄적이고 싶어서 두서없는 글을 써 본다.
나는 앞으로도 그대로겠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무성애와 무로맨틱이 대중에게 있어 상상 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해 본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밍아웃 그 이후 (0) | 2022.03.19 |
---|---|
시작은 외로움 (14) | 2021.01.02 |
무로맨틱 외로움 (10) | 2016.05.01 |
가치의 중심, 로맨틱 (6) | 2015.04.11 |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5) | 201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