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맨틱으로 정체화를 하고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언젠가 결국 헤어질 거라면 더이상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이 무색하게 그 사람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내 삶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부터 특별하게 느껴진 사람이었다면 나의 감정의 흐름을 전부 기억하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처음에는 그저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을 신경 쓰고 있구나.'
(첨언하자면 연애적으로 의식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 상태를 염려하는 것에 가깝다.)
초반에 말을 아끼던 그 사람은 언젠가부터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손꼽을 만큼 내향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이면서도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그동안 봐온 자신의 감정에 심취해 나에게 애정 표현을 해대던 사람들과 달리 그 사람의 행동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언제나 배려하기도 했고, 자신의 사소한 감정을 부풀려 표현하던 이들과 반대로 그 사람의 표현들은 그것보다 그 안의 마음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나는 주변인들에게 사려 깊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지만 로맨틱 감정이나 애정 표현 쪽에서는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때때로 누군가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를 무신경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여겨져도 개의치 않았다. 내 행동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상처 받는다면 안타깝긴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경우에는 달랐다. 아직 내가 실수한 적이 없는데도 언젠가부터 그 사람을 염려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무신경함으로 인해 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사람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에 스며들면서 가까워졌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즐겁고 소소하게 행복했다. 지쳐 있었다가도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금세 회복되곤 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가 잘되길 바라고 내 편이 되어 주었고 나도 그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람은 이미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가 되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랐고 앞으로 그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의 종류가 다른 이상 이 만남도 결국 '끝이 보이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흐지부지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는 플라토닉에 가깝다고 느꼈지만 가끔은 혹시 로맨틱이 섞인 걸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 나와 완벽하게 같은 감정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고 그 사람이 유로맨틱인 이상 로맨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해도 오랜만에 내 삶에 들어온 좋아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그 사람의 기분이 전해져서 나까지 행복해지곤 했다. 하루라도 그 사람의 안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기운이 나지 않았고 이틀 이상 소식이 없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자체가 좋아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마도 예전 같았으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며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수십 번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나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나는 그 말을 되돌려주지 않았다. 무로맨틱 무성애자인 나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이 무척 기뻐했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해가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그런 표현은 아끼고 언제나 에둘러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무로맨틱 무성애자는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무로맨틱 무성애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기에 그런 감정들이 궁금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드물기에 소중한 인간관계에 누구보다도 연연한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언제나 헤어짐이 있었고, 나는 관계의 끝을 맞이할 때마다 무척 아쉬웠다. 특히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안타깝고 아쉬웠다.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들과 헤어지면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았지만 막상 닥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도록 따뜻하고 잔잔하게 내 마음 속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관계가 끝나는 것이 무척 아쉽고 그 순간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관계가 끝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 사람과의 마지막은 갑자기 찾아왔다. 그 사람이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순간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돌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이 헤어짐은 그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뭐라고 말해야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염려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끝내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내 삶에서 사라졌다.
다음 날 그 사람의 빈자리를 실감하자 순식간에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몸 안의 체액이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했고 미열과 두통, 그리고 몸살 증상이 나타났다. 배가 고파도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분명 슬픔과는 다른 감정인데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쉬웠던 이전의 관계들과 다르게 그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소중한 걸 잃어버린 기분, 상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사실 난 내가 그런 경험을 하게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이론만으로 알던 무로맨틱 무성애자도 강렬한 애착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고 연애감정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유로맨틱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상황을 로맨틱하게 해석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 로맨틱 끌림일 가능성도 생각해 봤는데 역시 로맨틱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 감정에 이름 붙일 용어를 찾기 위해 나는 그동안 어려워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로맨틱과 플라토닉 끌림, 얼터러스 등에 대해 찾아봤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표현은 있어도 '이거다'하고 와닿는 표현은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걸 찾는다면 퀴어플라토닉 끌림이나 스퀴시 정도다. 혹은 내가 모르는 스펙트럼 어딘가에 존재하는 감정일 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어떤 용어를 붙이든 이것은 분명 무로맨틱 무성애자가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