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이야기 2013. 1. 1. 03:30

 

 

 이야기의 시작은 따뜻했던 2012년의 어느 날.

 아직 일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 날 우연히 무성애(Asexuality)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그저 호기심에 그에 대한 자료들을 읽게 되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것이 내 이야기 같았지만 난 그 사실을 외면하고 지나쳤다.

 

 많은 무성애자들이 무성애의 개념을 접했을 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난 나의 무성애적인 면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연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많은 반감을 사고 괴리감을 느꼈었지만 그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사람들과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운 좋게도 내 주변인의 대부분은 자신과 다른 자에 대해 꽤나 관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를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이상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고, 가끔 친구들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무성애적인 특성 외에도 많은 면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다르니까 다른 게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해 온 내게 무성애라는 개념은 단숨에 나를 성소수자로 만들어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 정체성을 확신하는 게 두려웠고, 스스로를 그런 틀에 넣어 많은 가능성을 막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자신이 무성애자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두꺼운 이야기책을 중간에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책을 다시 펼친 건 반년이 지나서였다.

 우연한 이야기에 그동안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이 문득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반년전과 다르게 진지한 마음이었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물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좀 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많은 생각 끝에 스스로를 무성애자로 정체화하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전처럼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떨까?

 겉으로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무성애자일 가능성이 99%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체화하는 것을 미래로 미뤘으며 무성애자가 아닐 가능성이 1%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것은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앞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성별, 젠더(Gender)  (0) 2013.02.05
숨길 수 없는 것  (2) 2013.01.21
무성애적 Romantic?  (0) 2013.01.12
무성애자의 커밍아웃  (8) 2013.01.03
이해할 수 없는  (0) 2013.01.01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