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coming out)이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그와 달리 본인의 동의없이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은 아웃팅(outing)이라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웃팅은 하지 말아야할 행동이다.
성소수자는 흔히 말하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무성애자(Asexual)와 인터섹슈얼(Intersexual), 그리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퀘스처너(Questioner)까지 포함한다.
오래전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그가 커밍아웃을 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친구는 많은 고민을 하고 나에게 말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내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지만 그가 어떤 말을 한들 나에게 그는 그저 소중한 내 친구일 뿐이었다.
일반인 내가 그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공감이나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 아닐까?)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니, 받아들여졌다. 소중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난 그가 너무 걱정이 됐다. 소수에게 폭력적인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고될 것 같아서...
난 그 친구 때문에 성소수자에 관해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다.(당시 AIQ에 관한 자료는 보지 못했다.) 그들에 대해 알고 싶었고, 적어도 그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냥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적어도 제대로 알았으면 해서..
내가 그들에 대해 갖는 감정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저런 사람들도 세상에 있구나."라는 단순한 마음이다.
LGBT에게 커밍아웃을 들었을 때,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 중 하나가
"저 녀석이 혹시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에 친구였던 그를 멀리하거나 혐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날 좋아하는 게 왜 싫은 걸까? 나에게 다가온다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혐오스럽거나 싫은 것과는 다를 텐데..)
또 다른 성소수자인 인터섹슈얼의 경우는 어떨까?
내가 인터섹슈얼에 대해 아는 건 만화 "IS"에서 본 게 전부지만, 남자 아니면 여자가 되어야만 하는 세상에서 (개인적으로는 주민번호를 생략할 때도 성별을 나타내는 숫자는 나타내 표기하는 것과 별거 아닌 설문에도 꼭 성별을 적는 란이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들이 받을 편견과 상처는 엄청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무성애자의 커밍아웃은 감수해야 하는 바가 적다고 생각한다. 사실 무성애자는 평생 자신이 무성애자인 것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반무성애자(demi-sexual)의 경우.
결론부터 말하면 "무성애자는 굳이 (의무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꼭 말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배우자가 될 사람뿐이다.
무성애자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내가 무성애를 인식하고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친구들과 대화해 보면서 느낀 것은 유성애자들은 무성애의 개념 자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성애자의 입장을 전제하는 것은 마치 흰색을 보고 지금부터 이건 검정색이다. 라고 말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상대는 내가 전제한 것을 잊고 어느새 그것을 다시 흰색이라고 인식하고 말하고 있게 된다.
다른 성소수자들과 달리 무성애자는 커밍아웃을 해도 혐오를 사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덤하게 "오늘 날씨 좋다"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처럼 지나가고 만다. 호기심에 질문공세는 조금 받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무시당한 것이다. 무성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나는 커밍아웃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약 어디에선가 무성애(Asexuality)의 개념을 처음 접한다면 가장 먼저 나를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의 확신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내가 무성애라는 개념을 알기 전부터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숨김으로써 생기는 불쾌한 일들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주변인들 그 중에도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상처가 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어왔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대놓고 말도 안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렇지 않았음이 드러났던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무성애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런 면에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사실은 유성애자들에 대해 생각보다 더 몰랐던 것처럼 그들이 나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그리고 다수는 언제나 소수에게 폭력적이니까..
나에게 있어 나의 무성애적 특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따뜻했던 가까운 이들의 '자신과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자비한 심적 폭력'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무성애자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그것을 알리고 싶은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알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가 하는 것도.
자신의 무성애적인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난 동성들도 참 매력적이더라. 그렇지 않아?" 라고 이야기 하는 것과
"나는 양성애자야." 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다.
같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확연히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 가볍게 받아들이던 일들 조차도 성소수자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순간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무성애자는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별로 없다. 굳이 말하자면 표면적인 것을 얻고 보이지 않는 것을 잃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무성애자들이 세상으로 나와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무성애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의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게 세상에 많이 알려지고 그들의 존재가 당연해지면 언젠가는 더 이상 무성애를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아도 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난 여전히 벽장 속에 있고, 아직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감수해야 할 아픔보다 커진다면 그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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