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중심주의

2013. 3. 5. 19:51

 

 

 

 흔히 성소수자라고 하면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혹은 좀 더 넓게 LGBTAIQ(LGBT에 Asexual, Intersexual, Questioning을 더한 것)를 말한다. (성소수자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그 중에 한국에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건 동성애자와 MtF트랜스젠더인데 그 두가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개념이 전혀 다른 그 두가지를 구분 못하는 건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성애가 정상이고 당연하다는 "이성애 중심주의"에 길들여진다. (물론 시스젠더 중심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강제하는 이성애 규범에 갇히게 되기도 한다. 동성을 좋아하는 건 우정, 이성을 좋아하는 건 연애감정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성애중심주의. 그렇기에 그들은 이성간에 친구란 있을 수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 중엔 그런식으로 이성애 중심주의에 갇혀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동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성별을 바꾸려는 것이 트랜스젠더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젠더는 바꾸고 싶다고 바꾸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적지향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퀘스처너 중에도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트랜스젠더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이성애주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성소수자를 편의상 LGBT라고 말하지만 그 중 T는 LGB와는 성질이 다르다. 이끌리는 대상을 나타내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과 스스로의 젠더를 자각하는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은 나타내는 바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시스젠더 이성애자'를 바른 것이라 여기고 그와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차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 입장에서 정의하는 남자란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자'이고, 여자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성애게 끌림을 느끼는 것이 그 성별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들이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건 이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의 성적지향의 출발점은 이성애가 아니다. 이성애를 제외한 다른 성적지향들은 '이성애라는 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성적지향일 뿐이다.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정정신청을 할 때 으레 "어렸을 때부터 동성을 좋아했으며.."라는 문구를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스젠더 이성애자'라는 정답을 설정해 놓은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이면서 이성애자도 아닌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까? (두개 다 틀리면 ○점이니까.. 빵점맞으면 안되니까?)

 

 여성이라면 무조건 여성스럽고, 남성이라면 무조건 남성스러워야하는 것도 아닌데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에게 시스젠더에게보다 더 그 성별스러움을 강요하는 것 같다. (그 성별스러움에 이성애도 포함되는 거겠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젠더를 인정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미 겉모습이 젠더와 같아도 그들을 SAAB(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sex assigned at birth)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말하지도 않고 자신이 그런줄도 모르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이들은 많이 봤다. 그 중엔 이성애주의에 갇혀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이 많다.

 

 이성애주의는 동성애와 양성애 등을 배척하지만, 동성애, 양성애 등과 함께 유성애의 편에 서 있다. 이성애 중심주의보다 이전에 많은 이들의 마음에는 기본적으로 당연하게 유성애가 깔려있다.

 

 성적지향이 없는 무성애에서는 정서적인 끌림, 즉 로맨틱지향(Romantic orientation)을 따로 이야기한다. 이성로맨틱, 동성로맨틱, 양성로맨틱, 다성로맨틱, 범성로맨틱, 트랜스로맨틱, 무로맨틱 등. 성적지향이 없는 무성애자가 무로맨틱인 경우도 있지만 그들도 로맨틱지향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유성애자들은 로맨틱지향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성적지향에는 로맨틱지향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성적지향과 로맨틱지향을 동일시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성애자에게 로맨틱지향이 있을 수 있듯이 유성애자에게 로맨틱지향이 없을 수도 있다. 이성애자이지만 양성로맨틱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외 다른 경우들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언젠가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말한 친구가 자신이 반한 동성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동성애자 지인에게 했을 때, 지인은 그 친구가 그 동성친구에게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는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넌 바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동성친구를 오랫동안 정말 좋아했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이었다고..

 

 좋아하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특별한지 스스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하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 또한 역시 어려운 일 아닐까?

 

 

 

 우리 사회는 소수자에게 가혹하다.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동성애자는 특히 포비아들로부터 혐오를 사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것에 긍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당당하게 혐오하는 것을 드러내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다수는 소수에게 폭력적이지만 소수는 다수에게 폭력적이지 않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다수를 이해하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걸 체득하지 못하는 건 어느쪽이든 마찬가지다. 자신과 다른 것은 어쩌면 평생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다수의 편에 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한다. 스스로를 틀에 가둬두고 그 틀을 벗어나려하지 않는 건 안정적이고 싶은 인간의 방어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현상은 다수자 뿐 아니라 소수자들에게도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이 그들과 똑같지 않다고 해서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자신의 성질을 말해주는 단어가 있다는 것, 공감할 수 있고 도움받을 수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그렇다고 어떠한 성향을 가진 한 사람이 그런 성향을 가진 다수와 꼭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용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그는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LGBTAIQ는 많은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인해 생긴 용어인 것이지 그 용어가 있어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단어들은 사람의 어떠한 특성을 말해주는 용어일 뿐, 개인이 맞춰야하는 목표가 아니다. 그 사람이 다수와 달라서 소수자라고 불리는 것이지,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 특성에 맞춰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편의에 의해 생긴 이성애주의가 어느새 이성애자여야만 한다고 사람들을 속박하는 이성애규범으로 주객전도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런 안타까운 일들은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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