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출간된 앤서니 보개트 교수의「무성애를 말하다(Understanding Asexuality)」를 읽어봤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번식이라는 본능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성애와의 비교를 위해 비非이성애로서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여러가지 통계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무성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오히려 유성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성애자의 성별정체성에 관련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성별정체성이라거나 젠더퀴어라는 용어는 단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부분을 자세하게 다뤄주지 않은 게 좀 아쉽다.

 

 책에 의하면 대다수의 무성애자들은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무성애자의 대략 13%는 자신이 이런식 즉,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젠더퀴어에 관한 설명이다. 그러니까 무성애자의 약 13%는 젠더퀴어라는 성별정체성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13%라는 비율은 그리 높은 비율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인의 젠더퀴어 비율은 1~2%이하일 것이라고 한다. 그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내가 젠더퀴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자신이 거기에 속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 때, Asexaul보다도 더 알려지지 않은 젠더퀴어는 세상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이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정체화하긴 어색하지만 지금의 난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말한다면 젠더퀴어 중에도 젠더리스(Genderless)에 가장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성적지향이 없는 것과 성별정체성이 없는 것, 그리고 성별을 보는 눈이 없는 것(Gender blind)이 어느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통계에 의하면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연관이 있다고 보고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 같지는 않다. 무성애자 중에 젠더퀴어인 사람은 10명중에 고작 1명 이상일 뿐이니까...

 

 

 성적지향, 특히 무성애는 선천적인 걸까? 아니면 후천적인 걸까? 많은 유성애자들은 무성애를 후천적으로 생긴 결함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것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까?

「무성애를 말하다」에서는 선천적일 가능성과 후천적일 가능성을 모두 언급한다.

 여기에서 손잡이 유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왼손잡이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왼손잡이는 인구의 10%나 됨에도 전통적으로 소수자였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태아의 비非전형적인 환경이 성적지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그 비전형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로 왼손잡이가 나온다. 실제로 많은 통계들에서 동성애자의 왼손잡이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무성애자의 26%가 오른손잡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이성애자의 왼손잡이 비율인 12%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무성애자에 관한 또다른 통계자료가 있다. 바로 무성애자의 70%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통계인「세계의 1%는 무성애자」에 대해 저자는 무성애자의 비율이 과소평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두 흥미로운 통계들이다. 하지만 통계는 통계일 뿐 절대적으로 신뢰하거나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적지향은 선천적이라는 게 정설이고 개인적으로도 선천적이라고 보지만 스스로를 후천적인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AVEN에서는 그들도 무성애자의 범주에 수용한다. 이렇듯 선천적인 무성애와 후천적인 무성애가 존재한다고 볼 때, (이 책은 마지막에서 후천적인 무성애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좀 더 연구해 봐야한다고 말한다.) 젠더퀴어이거나 왼손잡이인 무성애자라면 선천적인 무성애자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선천적인 무성애자와 후천적인 무성애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유성애자가 될 가능성이다. 후천적인 무성애자의 경우 미래에 성적지향이 생길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선천적인 무성애자의 경우 아마도 평생 무성애자가 아니게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