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외로움

잡담 2021. 1. 2. 09:53

 

 

 정체화 하기 전, 무성애를 알기 전, 그러니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전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연애를 하고 연애에 열광하는 걸까.'

 

 

 내 눈에 비친 다수의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가장하며 규칙이 정해져 있는 연애라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상대를 좋아해서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기 위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외로워서'라고 이유를 말했지만 나는 그런 연애가 더욱 외로울 것 같았다.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의 내면 세계는 전혀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던 친구가 연인과 헤어지면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퍼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에 바빠 내면를 탐미할 여유가 없는 그들은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는 연애의 규칙을 무기로 상대에게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무성애라는 개념을 몰랐을 뿐더러 내가 퀴어일 거라는 생각도 못했기에 '만약에 내가 연애를 한다면?'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주변의 친구들이 하는 인스턴트 같은 연애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진심보다 연인으로서의 의무가 앞서는 관계, 그러한 관계는 내게 결코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공허함과 동시에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 자명했다. 나에게는 잡담뿐 아니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래전부터 나는 입버릇처럼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어느날 친구가 그런 말을 친구 앞에서 하는 것에 대한 언짢음을 표한 후 자제하긴 했지만 그 입버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혼자있을 때도 지인들과 있을 때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친구들과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곤 했다.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친구를 원했다.

 

 무로맨틱으로 정체화한 몇 년 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당시 가까운 주변인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하나둘 떠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앞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점점 더 외로워질 거라 생각하니 무척 쓸쓸했다. 정체화 전에는 인간관계로 인한 허무함과 외로움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로맨틱으로 정체화하면서 그 막연한 가능성이 신기루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무렵 변해버린 친구들을 마주하는 것이 외로움으로 다가와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니 신기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마침 친구들도 사정이 있어 자연스럽게 한동안 친구들을 잊고 지낸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고비를 넘기며 한동안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잊고 지냈다. 그렇게 완전히 극복했다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반년여 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 입버릇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그 생각은 어느때 보다 강하게 지속적으로 마음을 지배했다.

 '새로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의 삶에서 로맨스의 비중을 느끼는 순간, 나에게는 그들에게 들려줄 그들이 공감하는 그런류의 이야기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친구들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조금 소외감이 들었다. 거기에 강하고 단호한 어투로 무로맨틱 혐오발언을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하는 친구의 모습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며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게는 당연한 것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그렇지 않은지. 이렇게 점점 메울 수 없는 근본적인 거리를 실감해 간다. 하지만 이런 내 기분을 말한다면 친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더이상 편하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커밍아웃한 소수의 사람 중 일부인데 난 커밍아웃 후에도 그들의 태도가 특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참 좋았다. 그렇기에 나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내 기분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물론 이해해보려는 의욕도 없겠지만.) 친구는 자각을 가지고 혐오를 표했지만 그것이 '무로맨틱 혐오'라는 건 아마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도. 

 

 그날의 경험으로 오랫동안 알 수 없었던 의문이 하나 풀렸다. 유독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가까운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 때문이었다. 함께 있어 즐겁지만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관계의 아이러니. 내가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었다. 

 

 

 

 내가 무성애와 무로맨틱 사회에서 가장 씁쓸했던 것은 유로맨틱 무성애자는 물론 무로맨틱 무성애자라 말하는 사람들까지도 연애에 열광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퀴어플라토닉 관계도 다른 형태의 연애라고 본다.) 형태만 다를 뿐 결국은 연애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친구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며 언제나 '새로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감각으로 그들도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성애자뿐 아니라 무성애자, 그리고 무로맨틱까지도 연애에 열광하는 것은 혹시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유한하고 부질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잠시나마 영원을 약속하는 관계, 그렇기에 사람들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열망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은 영원하지 않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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