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의 나는 자신이 이렇게 퀴어 중에도 퀴어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이것은 그동안 살아 오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만큼 힘들지도 않았고 고민할 계기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우연히 용어를 접하고 사소한 일을 계기로 의문을 갖게 되면서 하나하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퀘스처너라고 한다. 어떤 정체성이든 퀘스처닝 상태를 겪는 이들도 있고 그런 과정 없이 단번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Asexual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퀘스처너였던 적이 없다. 난 나의 성적지향을 다른 쪽이라고 착각한 적도 없고, 딱히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Asexuality라는 개념을 알게 된 순간 내가 asexual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내가 Asexual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건, 내가 그때까지 유성애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성애와 유성애를 가르는 벽과 그 차이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서 그 차이를 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금의 여지도 남김 없이 철저하게 정체성을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말하는 '언젠가는 유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시각에 맞서 내가 평생 무성애자일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결국 지금 확신해도 확인할 수는 없는 미래의 이야기지만..)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되었는데 일주일 정도 생각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아무려면 어때?"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만 굳이 스스로 언어로 표현-정체화-하지는 않는 상태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스스로를 Asexual이라 말하는 게 부담스럽고 어색하고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이제는 당연한 느낌이 됐다.

 

 나는 Asexual이다. 그 중에도 Gray-romantic이고 Gender-blind가 있다.

 Asexual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갈래가 많은 정체성이다. 나의 이야기는 무성애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나와 다른 부류의 무성애자들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부류로 정체화한 무성애자들과도 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성애란 개념을-정확히는 유성애의 개념도 함께- 알게 되고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romantic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나의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대가 이해 못 한다는 건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유성애라는 개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상대가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오해할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단정짓지 마." "아직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나서 그래."

 이것은 무성애자들이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무성애자에 대한 유성애자들의 흔한 반응 중에는 "말도 안 된다", "사랑을 못한다니 불쌍하다." 등이 있는데 저런 반응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된다"가 아니라 "나는 이해 못 하겠다" 아닐까? "사랑을 못한다니"가 아니라 "성애의 즐거움을 모른다니"아닐까? 어째서 유성애자들은 성애가 포함된 감정을 싸잡아 사랑이라고 미화하여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유성애자들에게 무성애자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유치한 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은 그렇지만 너도 언젠가는..." 이라고...

 

 그들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난 몇 년 전까지 누군가에게 끌림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난 자신을 Gray-romantic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확신한다. 내가 스스로를 Romantic-A라고 표현하게 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나의 주변인들은 내가 언젠가는 이성애자로서의 sexual하고 romantic한 끌림을 느끼게 될 것을 기대한다. 아무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던 내가 결국 끌림을 느끼게 된 것처럼..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많은 이들에게 생각되어지곤 한다. 그것이 많은 이들이 반드시 경험한다고 믿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기에 난 그들의 의도가 좋은 의도라면 그런 식으로 염려해 주는 것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무성애는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Asexual은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상태나 aromantic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성애자 중에도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Asexual의 중요한 점은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고 성적 충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성애에 관한 설명 중에 성적 충동을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길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부류도 있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이는 Gray-A에 속하는 사람들에 관한 설명이다. AVEN에서는 Gray-A도 넓은 의미의 Asexual에 포함시키지만 분명 Asexual과 Gray-A는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분류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Gray는 무無가 아니니까.

 

 난 romantic으로 분류될 거라 생각되는 감정을 느껴봤고, 그것이 단순한 관심이 아닌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흔히 생각되는 romantic이라는 감정과도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걸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유성애자는 물론 romantic-A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닿고 싶고 상대의 손을 잡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불과 1년 전쯤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영화나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그런 장면을 흔하게 봐왔지만 내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그저 책에서 배운 지식이나 공식처럼 받아들여 왔다는 걸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연애감정에 관한 그런 가벼운 정도의 욕구도 느껴본 적이 없다. (난 어리지 않다.)

 

 무성애자와 유성애자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적지향은 유동적이라 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선천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후천적 무성애자도 있을 수 있고 무성애자가 유성애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이런 경우는 애초에 유성애자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평생 무성애자인 사람과는 타고난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많은 유성애자들의 말처럼 내가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아니, 죽기 직전에라도 유성애자가 될 지도 모른다고 하자. (사실 무성애자가 성애를 느끼게 된다면 그는 유성애자 보다는 Gray-A일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을 기대하며 많은 이들이 무성애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죽는 순간이나 돼야 "난 평생 무성애자였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만약 먼 미래에 아니, 내일 당장 유성애자가 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난 무성애자다. 유성애자가 된다는 장담할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까지 무성애자였고 이 순간에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나에겐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의 무성애 성향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퀘스처너 중에는 무성애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유성애자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된다.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생각하든, 미성숙한 유성애자라고 생각하든 그건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내가 평생을 살아도 유성애자가 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언어로써 표현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평생 asexual일 거라는 걸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가 아닌,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asexual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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