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를 검색해보면 많은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퀘스처너리의 이야기부터 이미 정체화한 무성애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벼운 농담의 소재로 무성애자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도 볼 수 있다. 물론 무성애에 관한 잘못된 정보들과 그런 잘못된 정보를 통해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한 무성애자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무성애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고 무성애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온라인에는 무성애자가 많은데 실제로 무성애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들이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무성애(Asexuality)를 알게 된 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이미 알고 있던 나의 주변과 새로 접하는 이들을 보고 '어쩌면 저 사람도 무성애자(혹은 그레이A)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미 알던 사람들 중에 무성애자나 회색무성애자(Gray-A)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르다고 느꼈던 이들이 나와 함께 비非성애자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무성애를 몰랐을 때는 다수와 비슷해 보였던 회색무성애자(Gray-A/Demisexual)나 로맨틱A(Romantic Asexual)같은 로맨틱(romantic)성향이 있는 비성애자들이 이제는 유성애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쪽보다는 나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난 그들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확인한 바가 없다. 그들의 자세한 상태를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들 중에 나에게 커밍아웃 해 온 사람도 없으니까. 물론 나도 그들에게 커밍아웃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그들 중에는 정체화한 무성애자(혹은 Gray-A)도 있겠지만 무성애의 개념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을 일반-이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굳이 '너는 퀴어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사실이 그에게 도움이 될 지 혼란만을 안겨줄 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퀘스처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건 내가 무성애를 처음 접했던 때 느꼈던 답답함을 느낄 퀘스처너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생각을 말하고 기록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기록하고 고찰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성별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포스팅 하고 싶은데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보니 수위 조절이 어려워서 쓰다가 그냥 삭제하곤 한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는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고 줄 수 있는데 혹시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셈이 되고 있는 거라면 참 안타깝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퀘스처너나 로맨틱 무성애자(Romantic Asexual) 중에는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나의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무성애라는 개념을 알게 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무성애의 개념을 몰랐던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연애감정에 있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연애라는 걸 하려면 내 쪽에서 양보하고 다수가 즐기는 연애라는 역할극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성애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요구하는 연애는 "귀찮은 역할극"처럼 느껴졌다.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는 연애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도 딱히 연애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나와 맞지 않는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 귀찮은 역할극일 뿐이었다.

 

 내가 진지한 연애를 일부러 노력해서 해 볼 수도 없었던 건, 나는 상대가 마음에 든다 해도 상대의 방식-로맨틱한 유성애-에 맞춰 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만큼 상대와의 관계를 열망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을 감수할 만큼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물론 상대가 내 방식-그레이 로맨틱한 무성애-에 맞출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유성애와 무성애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을 몰랐다.)

 소수가 다수에게 맞추는 게 더 쉬울 거라는 건 다수들의 착각이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한쪽에게 맞추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시간이 흘러 무성애의 개념을 알기 직전의 나는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게 된다면 이제는 유연한 마음으로 다수의 방식-로맨틱한 유성애-에 맞추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세상에 꼭 맞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서로 맞춰가며 살고 있다'는 말을 생각했다. 언제나 막연히 결혼이라는 것을 상상하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하나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해 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내게 무성애의 개념은 세상에 나와 비슷한 무성애자가 용어를 붙일 만큼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 사실은 내게 어른스럽지 못해서 맞추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세상에는 타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러니까 "억지로 유성애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성애자가 세상에 적어도 1%나 존재한다니! 나와 연애관이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내게 1%는 엄청난 비율이었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무성애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무성애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도 0%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외에도 무성애(Asexuality)라는 개념 하나가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자신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도 그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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