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젠더퀴어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난 그에 관한 자료를 열심히 찾아봤다. 그 개념들을 간단하게 한 문장의 설명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록 사전적인 이해에 그친다하더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때보다 젠더퀴어의 개념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있게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을 접하면서 잘못된 정보는 최대한 걸러내긴 했지만 그 과정을 지나 남게된 자료 전부가 신뢰할 수 있는 올바른 자료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난 내가 알고 있는 젠더퀴어를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젠더퀴어에는 안드로진, 바이젠더, 트라이젠더, 팬젠더, 에이젠더, 젠더리스, 뉴트로이스, 젠더플루이드 등이 있다. (젠더퀴어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은 http://smrti.tistory.com/10)


 젠더퀴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퀘스처닝 상태를 겪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나도 젠더퀴어에 대해서는 퀘스처닝 상태를 겪었는데 많은 이들이 퀘스처닝을 경험하는 것은 아마도 젠더퀴어의 개념을 명쾌하게 이해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젠더퀴어에 관한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중에 특히 젠더플루이드와 팬젠더의 개념이 막연하게 느껴졌고, 안드로진과 에이젠더에 관해서는 그 의미의 차이는 알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 다른 정체성들, 퀘스처너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몇 가지 정체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면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는 사전적인 이해를 넘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안드로진Androgyne / 바이젠더Bigender /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가졌다고 설명되는 성별정체성.

 안드로진을 남성과 여성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젠더라고 한다면, 바이젠더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젠더를 오가는 성별정체성이다.


 젠더플루이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는 안드로진과 달리 그 사이를 움직이는 유동적인 젠더이다. 바이젠더가 남성과 여성이 전환되는 정체성이라면 젠더플루이드는 자연스럽게 성별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오간다. (어떤 때는 여성이 더, 어떤 때는 남성이 더 나타나는 유동적인 젠더.)

 

 *위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가졌다고 설명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비교하였지만, 바이젠더와 젠더플루이드의 경우 반드시 남성과 여성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그 외의 다른 젠더들을 포함할 수 있다.



○바이젠더Bigender / 트라이젠더Trigender

 -"젠더의 전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성별정체성. 바이젠더는 둘, 트라이젠더는 세 가지 젠더를 오간다.

 바이젠더라고 하면 남과 여의 두 가지 젠더를 오간다는 설명이 지배적인데 다른 젠더를 포함한 두 가지를 오가는 젠더가 있다면 그 또한 바이젠더라고 할 수 있다.



○에이젠더Agender-젠더리스Genderless / 뉴트로이스Neutrois

 -여성도 남성도 가지지 않았다고 설명되는 성별정체성.

 에이젠더와 젠더리스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둘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에이젠더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별 상태를 하나의 젠더로 구현한 것을 말한다면, 젠더리스는 성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젠더리스를 self-genderblind라고 설명하고 싶다.


 뉴트로이스는 중립적인 성별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위치한 안드로진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별중립은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의미의 중립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제 3의 성별인 뉴트로이스. 뉴트로이스는 성별을 가지지 않는 에이젠더와 달리 성별을 갖기 때문에 남 또는 여의 성별적인 특성을 지닌 신체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며 이를 없애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뉴트로이스로 신체를 바꾸는 트랜스섹슈얼도 존재하며, 남성에서 뉴트로이스로 전환한 자를 MTN (Male to Neutrois), 여성에서 뉴트로이스로 전환한 자를 FTN(Female to Neutrois)이라고 말한다.



○안드로진Androgyne / 팬젠더Pangender

 -젠더의 혼합으로 설명되는 성별정체성.

 안드로진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이분법에 갇혀 남성과 여성이 혼합된 성별정체성을 가진다면, 팬젠더는 이분법을 벗어나 모든 젠더가 혼합된 성별정체성을 가진다.



○안드로진Androgyne / 에이젠더Agender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설명되는 성별정체성.

 안드로진은 여성과 남성을 모두 가지고 그 안에 있다면, 에이젠더는 여성과 남성에서 벗어나 모두 가지지 않는 정체성이다. (간단히 말하면 안드로진은 간성, 에이젠더는 무성.)



 안드로진-에이젠더는 내게 퀘스처닝을 경헙하게 한 정체성들인데 난 이 둘의 의미의 차이를 사전적으로는 이해했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아는 것과 그것을 성별로 인식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스스로의 성별을 정체화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난 이런 의문을 계속 가져왔지만 지금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모르게 때문에 젠더리스라고.. 아니, 젠더리스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모르는 것이라는 해답을 찾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된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말도 함께..

 난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나 자신을 어떤 용어로 정체화하고 그 틀에 끼워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난 '이미 정의되어 있는 정체성들'에 대한 지식을 얻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느껴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존재하는 개념들에 대해서 안다는 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 대한 중요한 고찰일 뿐이다. 나는 그런 과정들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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