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Asexuality)는 성적 충동과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정의되는 간단한 개념임에도 많은 이들이 무성애라는 개념을 오해한다. 무성애는 흔히 이성애(heterosexual), 동성애(homosexual), 양성애(bisexual) 등의 성적지향의 연장선에서 생각되어지곤 하는데 그것이 무성애의 개념에 대해 더욱 의문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무(無)+성애(性愛)로 표현되는 무성애는 ■성(■性)+애(愛)로 표현되는 다른 성적지향들과 용어의 구조가 다르다. 무성애는 그들의 연장선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의미하는 동성애, 이성애 등과 달리 무성애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에 관한 정체성이다. 나는 AVEN삼각형이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AVEN삼각형에 대한 설명은 http://smrti.tistory.com/2 하단 참고바람)

 

 

 성적 끌림은 무성애와 유성애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무성애(회색유성애)로 나누어 진다.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

 : 타인과 성적으로 공유하고 성적으로 접촉을 하고 싶도록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신적이거나 정서적인 영향력.

 

 <성적 끌림의 유무에 따른 분류>

 ○유성애자(Allosexual/Sexual) :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회색무성애자(Gray-asexual/Gray-sexual) : 무성애와 유성애 사이의 영역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

 ○반성애자(Demisexual) : 회색무성애의 한 유형. 감정적 유대를 형성한 후에만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이 끌림이 반드시 로맨틱한 끌림을 동반할 필요는 없음.

 ○무성애자(Asexual) :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이 중 무성애자가 아닌,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자들에게는 성적 지향이 존재한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 특정 방향이나 성별에 대해 나타나는 성적인 끌림의 지속적인 양식.

 

 <성적 지향에 따른 분류>

 ○이성애자(Heterosexual) : 이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동성애자(Homosexual) : 동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양성애자(Bisexual) : 두가지 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다성애자(Polysexual) : 둘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성별이분법을 거부함.

 ○범성애자(Pansexual) :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성적 끌림을 느낌. Gender blind로 설명.

 ○남성애자(Androsexual) : 남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여성애자(Gynesexual) : 여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

 

 ※여기에서 설명한 것은 좁은 의미의 성적지향이다.

  무성애와 회색무성애는 넓은 의미의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 중 하나이다.

 

 유성애를 당연하게 전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성적지향을 정의할 때 성적끌림과 로맨틱 끌림을 함께 말하지만 유성애를 전제하지 않는 무성애의 입장에서는 성적 지향과 로맨틱 지향의 개념을 따로 이야기한다. 성적 끌림의 유무에 상관없이 로맨틱 끌림을 느낄 수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으며 성적 지향과 로맨틱 지향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로맨틱 끌림과 지향에 대한 설명은 http://smrti.tistory.com/2)

 

 

 <로맨틱 지향과 성적지향의 일치/불일치에 따른 분류>

 ○페리오리엔티드/페리오필릭(Perioriented/Periophilic) : 로맨틱 지향과 성적 지향이 같은 유형.

 ○베어리오리엔티드/베어리어필릭(Varioriented/Variophilic) : 로맨틱 지향과 성적 지향이 다른 유형.

 

 

 

 그렇다면 성적/로맨틱 지향에서 기준이 되는 성별이란 무엇일까?

 성적지향이나 로맨틱지향을 이야기할 때 자신과 상대의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설명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말 그럴까?

 

 생물학적인 성별이 아닌 성별정체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젠더퀴어를 포함한 트랜스젠더에게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성별정체성을 제대로 알까? 상대의 정체성을 잘못알고 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단성애자(單性愛者 Monosexul/Monoromantic)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별정체성은 지향의 기준이 되지만 상대의 성별(혹은 성별정체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끌림을 느끼는 당사자가 상대를 '어떤 성별로 느끼느냐' 혹은 '어떤 식으로 인지하느냐'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젠더블라인드(Genderblind)로 설명되는 범성애이다. 그들은 상대의 성별을 보지 않는다. 설사 상대에게 스스로의 성별이 중요하다 해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 성별은 지향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 된다.

 

 만약 이성애자가 젠더퀴어에게 끌림을 느낀다면 그의 정체성이 바뀐 것일까? 그가 정말 이성애자라면 그는 젠더퀴어인 상대를 이성으로 인지하고 끌림을 느낀 것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가 젠더퀴어임을 알게 된다해도 그 이성애자의 끌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정체성이 범성애자나 양성애자로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이성애자에게 그는 여전히 이성으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젠더퀴어 당사자의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상대의 성별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아는 것'과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물론 상대의 성별 정체성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만약 여성 동성애자가 수술전 혹은 비수술 MTF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끌림을 느낀다면 타인들이 보기엔 그저 이성애자로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는 동성애자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례들을 보면 성적지향에는 신체가, 로맨틱 지향에는 성별정체성이 좀 더 비중있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확인된 연구결과는 없다.

 

 

 

 성정체성의 세계는 단순하고도 복잡하다.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동성애자이면서 트랜스젠더인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은 다른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유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을 동일시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다.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퀘스처너리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의 용어로 표현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성정체성에는 많은 영역이 있고 그렇기에 하나의 용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흔히 일반이라고 표현되는 이성애자는 "시스젠더 유성애자-이성애자 유로맨틱-이성로맨틱"이다.

 

 

 난 스스로를 일반적인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정체화하지 않은 회색/반무성애자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들의 인생에서는 그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떠한 성향을 가진 것과 정체성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정체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만약 "회색무성애 이성애 양성로맨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할 때, 같은 정체성으로 분류되는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며 크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을 회색무성애자로,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을 양성애자로 정체화할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체화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나를 회색로맨틱 무성애자(Gray-romantic Asexual)로 정체화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연애감정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 사회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우정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무로맨틱 무성애자(Aromantic Asexual)로 정체화할지도 모른다.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해도 각자 정체화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점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정체성을 찾은 많은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 중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 정체성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성이 개인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영역이며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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