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로맨틱한 사랑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까지도 느끼지 못하는 감정없는 냉혈한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성애자는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뿐이다.


 많은 유성애자들은 무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존재를 인정한다 해도 무성애자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재로 설명되는 정체성인 무성애는 다른 것들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LGBT 등과는 다르다. 나는 무성애자가 그들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무성애자 역시 힘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무성애자들이 여러가지(결혼과 연애 강요, 애인 없는 낙오자 취급. 싸이코패스 취급 등) 고통을 토로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크게 슬프지는 않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커밍아웃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정체성을 알게 되기 전부터 많이 겪어온 나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있는데 난 내게 그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된 후 난 그 이유의 일부를 내 정체성(무성애자, 젠더리스, 젠더블라인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젠더리스 무성애자들이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는 건 아니다. 이것은 정체성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런 정체성을 가진 나'의 문제이다.


 때때로 차갑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다정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나는 인간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회색지대의 로맨틱한 감정을 드물게 경험하는 무성애자(Gray-romantic Asexual)이자 젠더블라인드를 가진 젠더리스이다.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면 거의 항상 그 중에 누군가를 '로맨틱하게, 혹은 특별하게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그 오해는 오해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나기도 하고 제삼자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는데, 후자의 경우-특히 그 일이 그 대상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날 슬프게 한다. 소중한 인간관계 한 명과 서먹해지는 결과를 불러 오니까...


 내가 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아부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내게 하는 만큼을 내 기준으로 바꿔서 돌려주는 것뿐이다. (내가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애정이 크게 느껴졌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 유성애자 친구에게 이 일에 대해 상담했던 적이 있는데 그는 '네가 오해 받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입장에서의 사고일 뿐이다.


 난 내가 거의 모든 관계에서 성별을 인식하지 않고 성애와 로맨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분명 큰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알게 된 후에는 그런 일을 더이상 겪지 않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의 오해를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문제가 되는 사항을 정리해 보면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유성애자들의 시점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외의 사항은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성별인식'과 '신체접촉', 그리고 '애인의 부재'의 세 가지이다.



 첫째, 성별인식.

 겉모습으로 이성과 동성을 나누고, 그것이 중요한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타인은 물론 자신의 성별도 인식하지 않는 내가 무심코 하는 실수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도 모습이 이성인 이들과 동성인 이들을 똑같이 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으니까... 성별이 중요한 이 사회에서 젠더리스는 자신의 성별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들과 수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둘째, 신체접촉.

 나는 신체접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피하거나 혐오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내가 (특히 모습이 이성인) 사람과 우연하게 가벼운 신체접촉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손이 살짝 닿는다거나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 상대방의 어색함이 전해져 오는데 그들의 입장을 모르는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일어난다.


 '바로 빠르게 접촉을 피하면?' → '더러워서 피했다며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 '내가 좋아해서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오해하지 않을까?' → '어쨌든 급히 피한다면 어색함이 감돌겠지?'

 '천천히 자연스럽게 접촉을 뗀다면?' →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겠지?' / '혹시 좋아한다고 오해할까?' → '어쨌든 상황은 자연스럽게 넘어가겠지?'


 친분이 많지 않은 경우엔 이런 사고에 의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게 되고(상대가 더러우면 전자를 택하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실례될 것을 염려해서 대부분의 경우 불쾌함을 감내하고 후자를 택한다), 친하고 편안한 사람의 경우엔 별다른 생각없이 후자의 경우가 된다.


 이성애자들이 그 상황을 왜 그렇게 어색해하는 건지 지식으로 대충 알 뿐 잘 모르고, 내가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필요한데 나는 사고를 통해 적어도 상대방이 기분 상할 가능성이 낮은 쪽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결국 상대를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지만 전자를 택한다고 해서 받을 오해를 받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셋째, 애인의 부재.

 애인이 없으면 슬프다고 말하는 유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애인의 부재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나에게 장기간 애인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혹시 저 사람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과 연애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혹을 받게 되기도 하고, 어느새 그 대상에는 이성뿐 아니라 동성까지 포함되게 된다.




 사실 이런 오해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내가 그들을 싫어한다고 오해받는 것보다는 좋아한다고 오해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슬프다고 느끼는 경우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애인이 있는 등의 내가 좋아한다면 곤란해지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고 제삼자들이 의심하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 때문에 서로 미안하게 되고 관계가 어색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충분히 이해함에도 친밀감이 크면 클수록 느끼는 상실감과 상처는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오해가 풀리거나 익숙해져 일상에 녹아들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언제라도 어색해질(연인이 될) 수 있는 사이'로 보여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상대가 편안해도 무작정 편안하게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나는 정말 괜찮고, 상대 또한 정말 괜찮다해도 사회적으로는 절대로 괜찮지 않은 그런 현실이 참 서글프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잘들 지내던데, 어째서 그들은 내가 판단하기도 전에 내 앞에 서서 나를 가려내는 걸까? 이런 일은 겪어도 겪어도 그저 익숙해질 뿐, 무덤덤해지지가 않는다.


 유성애자, 특히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애인을 위해 친구를 기꺼이 가려내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그들에게 있어 성별, 그리고 성애란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로맨틱 외로움  (10) 2016.05.01
가치의 중심, 로맨틱  (6) 2015.04.11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4) 2014.08.15
외로움  (15) 2013.03.26
새로운 것  (0) 2013.01.01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