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겉모습

이야기 2014. 10. 27. 01:37



 보여질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볼 수 있는 사실들과 달리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사실이나 현상들은 보이는 것들처럼 간단히 증명할 수 없다. 특히 그것이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아닌 생소한 개념이나 현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믿고 싶은가 믿고 싶지 않은가에 따라서. 어떤 이들이 무성애자나 젠더퀴어를 부정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한두개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이 나의 특성들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의 기저에는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반감과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들은 믿기지 않거나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나에게 가끔은 폭력적인 마음을 갖기도 하고 가끔은 그런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래서 네가 특별하다고?"


 확실히 무성애와 젠더퀴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에게 무척 좋은 소재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도 자칫하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생각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뒤늦게 실수했다는 걸 느끼거나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글을 쓰는 경우엔 저장버튼을 누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내가 세상의 다수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난 내가 가진 많은 요소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보다 타인의 마음을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이 훨씬 편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괴로움들을 말로 풀어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연하게 겪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적 소모가 큰 일이다.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어렵고, 사람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쉽게 납득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이자 부재로 설명되는 정체성인 무성애나 에이젠더/젠더리스 등을 증명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경험했던 것을 찾아내어 부재를 부정하려 한다.


 무로맨틱이 아닌 무성애자의 경우 누군가에게 무성애자임을 이야기했을 때 "무성애자라고? 너 전에 누구 좋아했잖아?"라는 반문을 듣기도 한다. (덕분에 난 이것을 아웃팅 당하지 않기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무성애의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무성애자의 이미지는 무로맨틱 무성애자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무로맨틱 무성애자라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다. 없다는 것은 당장 증명할 수 없으니까..



 어떤 이들은 성적인 매혹을 줄 생각이 없는 무성애자는 겉모습을 치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보개트 교수는 무성애를 말하다에서 "이성애 여성들은 (그 상대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성이 자신에게 성적으로 매혹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지만 무성애 여성들은 이성에게 성적 매혹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에는 여성에 대한 언급 밖에 없지만 난 남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무성애자의 이런 심리가 겉모습을 치장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난 사실 저런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놀랐다. 저런 오해를 하는 유성애자들은 누군가를 성적으로 매혹하기 위해서만 겉모습을 치장하는 걸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겉모습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매체이자 타인에게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겉모습, 그 중에도 복장은 가장 간편한 표현의 수단이 된다.


 난 젠더리스이지만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별(SAAB:sex assigned at birth)에 충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에이젠더/젠더리스 중에는 정말 젠더리스한 모습의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20대 초반쯤까지는 꽤 젠더리스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누가봐도 SAAB로 보여지고 덕분에 그 성별 취급을 당한다. 가끔 다른 성별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외모 때문이 아니다.



 젠더리스는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정체성이다. 하지만 난 내가 타인들에게 어떤 성별로 인식되는지를 인지하고 싶지 않아도 인지되는 수많은 순간들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 중에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 순간도 싫은 순간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 젠더리스한 외모를 크게 갈망하지는 않는다.


 부여받은 성별에 충실한 모습을 하는 것에는 분명 좋은 점들이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특정 성별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진 것은 20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작년에야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이 신기할만큼 난 내 신체적 성별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누구나 당연히 이럴 줄 알았다.)


 성별정체성을 가진 (젠더퀴어를 포함한)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마음과 다른 신체로 변해가는 것에 혼란스러웠다면 난 생물학적 성별이 신체를 확연하게 달라지게 하고, 또 그것에 맞춰 사람들이 성별을 가르고 선을 긋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혼란스러웠다. 어린 시절의 난 성별을 혈액형 정도의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은 현실을 알고 있다.) 그 시절의 난 내 신체가 변해가는 것이 그저 "이상했다".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젠더블라인드라는 성질은 성별을 중요시하고 확실하게 나누는 세상과 부딪힌다. 그 부딪힘은 격렬하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관점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과 살아가는데 문제를 발생시키고 그로인해 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냥 성별같은 거 따지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난 내 모습을 좋아하지만 특정 성별로 사람들에게 취급되는 것이 싫었다. 지금은 적응해서 무덤덤해졌지만 지금도 싫은 순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도 이성애자가 나에게 성적끌림이 주가 되어 나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대하는 순간들을 특히 싫어한다(한순간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더욱). 이것은 내가 무성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젠더리스/에이젠더는 성별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신체의 성별과 마음의 성별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성별적인 신체에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신체의 성별과 젠더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때로는 신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렇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하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다. 내가 성별을 인식하지 않아도 나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성별을 따지고 나누려 한다. 타인들이 나에게 성별을 강요할 때, 난 내가 특정 성별로 보여진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하는데 그 중에도 싫은 상황들과 마주하게 되면 내 신체의 성별적인 특징들에 대한 거부감이 고개를 든다.

 사실 나의 경우엔 열망이 큰 것은 아니지만 신체의 모습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젠더리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신체적 성별에 충실한 외모를 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내가 성별중립적인 차림을 한다고 해서 내 외모가 젠더리스하게 보여지지는 않기 때문이다.(과거에도 지금도 성별중립적인 옷을 즐겨 입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SAAB로 인식되는지 잘 알고 있다.)



 차림새에 따른 사람들의 태도에 차이가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 사회는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이고 성별을 나누고 성별에 따른 행동양식을 강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성적인 차림을 한 여성이나 남성을 보는 시각이 가히 긍정적이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중성적인 차림을 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 혹은 뭔가 부족하거나 불완전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은근히 무시하거나 어린애 취급하는 등.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나이가 몇인데 저러고 다니냐?"고..

그들의 시선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런 시선을 받음으로써 불쾌함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으니까..


 나의 경험에 의하면 똑같이 성별중립적인 옷을 입어도 머리 모양 등의 세부적인 모습이 SAAB스러운가 아닌가에 따라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랐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중성적인 모습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것이 그것의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태도가 다른 진짜 이유는 SAAB스러운 모습을 했을 때의 내 모습이 미적으로 보다 보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내 외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모습이 내 신체적 성별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은 내가 그런 모습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난 스스로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모습으로 있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거울을 볼 때도 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는 편이 더 기분좋을테니까..)


 마지막으로 성별 중립적인 모습을 선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좀 남자/여자답게 하고 다니라는 주변의 잔소리와 간섭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난 성별중립적인 차림과 성별스러운 차림을 함께 택함으로써 그런 잔소리와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난 그들의 잔소리 속에 '이 아이가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겨 있다고 느끼는데 난 주변인들에게 괜한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퀴어인 건 맞지만..)



 성별이 중요하지 않지만 성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성별을 잊고 살아갈 수 없는 젠더리스.

하지만 난 나의 신체적 성별을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어떤 성별로 인식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내가 특정 성별로 취급되는 것이 나에게 크게 불쾌함을 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난 그것이 장점으로 다가오는 소소한 상황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성별로 취급된다는 자체에 거부감이 커서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난 이것을 내가 특정 성별 취급 당함으로써 겪게되는 싫은 상황들에 대한 소소한 보상으로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에이젠더/젠더리스가 특정 성별로 대표되는 모습으로 치장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젠더리스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없는 것을 표현하기란 어렵다. 성별이 없는 것이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겉모습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에이젠더나 젠더리스를 모습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성별을 인식하지 않아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젠더리스가 제대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젠더블라인드가 당연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성별을 나타내는 다른 젠더퀴어들과 달리 젠더리스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내가 에이젠더라는 표현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난 나를 무성별로 정체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난 성별을 정체화한다는 느낌을 모르고, 나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것은 '확실하게 성별이 없다'고 느끼는 것과는 좀 다르다.


 젠더리스인 나에게 나의 신체는 태어날 때 부여받은 나를 담는 그릇이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성별(SAAB)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어떠한 성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드는가이다. 아마 다른 성별의 모습으로 태어났어도 그 모습이 내 취향에 맞았다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특정 성별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SAAB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난 모든 젠더리스들이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젠더리스는 외모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완벽하게 특정 성별적인 모습을 추구할 지도 모른다. 또한 누군가는 최대한 성별을 알 수 없도록 겉모습을 치장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성별중립적인 모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뉴트로이스 혹은 안드로진의 표현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하더라도 난 그런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보고 싶다. 한순간이라도 당연하게 SAAB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조금 감격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성별로 보여지는가 보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그리고 나다운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난 가장 자연스럽고 나를 담은 그릇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고 싶다.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해도 난 지금까지 그 모습을 지니고 살아왔고,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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