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첫눈에 반하는 것은 외모를 좋아하는 것이고, 외모에 반하는 것은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무성애자는 첫눈에 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난 무성애자이지만 내가 이후 좋아하게 된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 사람에게서 독특한 느낌을 받았고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친분이 거의 없을 때 이미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외모도 빠지지 않았는데 난 분명 그 사람의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외모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 취향과 거리가 있었다)
첫눈에 마음에 든다는 것은 외모가 마음에 든다는 것과는 다르다. 난 사람과 사람이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이 있다고 느낀다. (물론 외모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외모와 성적 끌림은 어떨까? 외모에 반한다는 것은 미적으로 끌린다는 것을 말한다. 미적 끌림이 다른 끌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미적 끌림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외모와 성적 끌림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많은 유성애자들이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성적으로 끌렸다'는 것을 '외모에 반했다'고 에둘러 말하고 그것이 관용적 표현으로 굳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성적끌림을 미화하거나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무성애자들은 무성애의 로맨틱에 대해 말할 때 '무성애자는 성적이지 않은 연애감정을 느낀다.'고 애써 설명해야 한다. 유성애 중심주의 사회에서는 연애감정에 '성적인'이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처럼 가끔 난 유성애 중심주의 사회의 언어적 표현이 나의 언어적 표현과 다르다고 느낀다. 무성애자와 유성애자의 언어적 표현이 다른 것은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속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내게 고백했을 때 난 그 사람에게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데? 착각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멋대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다니 너무한다"며 정말 날 좋아한다고 말했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흔하고 꽤나 피곤한 유형이다.
'나를 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좋아하는 척 하면서 귀찮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 기분 따위는 헤아릴 생각이 없는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들.
그에 반해 내가 저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숨겨지지가 않아서 그들을 본 누구나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진심이 전해져 오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들의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이고 싶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전자와 후자의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정도 마음의 통제가 가능하고 날 배려하려 노력하는 그들의 마음은 꽤 진지하다고 생각된다. 애인이 '나이길 바라는' 연애감정에 충실한 사람들.
이렇게 내가 접한 사람들의 연애감정을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눴지만 저마다 마음의 느낌과 크기가 다르고, 유형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형도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유형의 경우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나의 가치기준일 뿐,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감정이 크든 작든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엔 저런 식으로 감정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감정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성애와 끌림의 개념을 알게 된 지금은 그들이 내게 느끼는 '끌림의 종류와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 저런 차이가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물론 감정의 크기도 중요한 요소이다.)
AVEN에서 말하는 끌림의 종류에는 미적 끌림, 로맨틱 끌림, 감각적 끌림, 성적 끌림이 있는데 난 여기에서 감각적 끌림 대신 그 사람의 내면에 끌리는 내적 끌림을 넣어 위의 차이들을 설명하고 싶다.
우선 위의 세가지 유형 모두에서 기본적으로 비슷한 정도의 미적 끌림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난 기본적으로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아닌데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순히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은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외모에 대한 호불호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연애감정이라고 생각되는 세 번째 유형인 '애인이 나이길 바라는 사람들'의 경우 로맨틱 끌림이 지배적이고 성적 끌림이 부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나와 최종적으로 연인관계가 되는 것을 바라지만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1~4년)으로 생각하며, 친구로 지내려는 듯 곁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나를 부담스럽게 해서 내 쪽에서 멀리하도록 만들거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가장 흔하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첫 번째 유형인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성적 끌림이 지배적이고 로맨틱 끌림이 부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유형은 나와 단기간(1~3개월) 안에 연인관계가 되길 바라고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다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금세 마음을 털어내고 주변에서 사라지는데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기까지의 시간이 나에겐 지옥이다. 유성애자 중에는 이런 유형이 꽤 많은 듯하고 이런 사람들끼리 곧잘 연애하는 걸로 보인다. 그들의 마음이 진심이든 아니든 성적 끌림에 가치를 두지 않는 나로서는 그들에게서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 (이 유형의 인간들만 주변에서 사라져도 인생의 스트레스가 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
진심이 느껴지는 두 번째 유형인 '나와 함께이고 싶은 사람들'의 경우 다른 유형들과 달리 내적 끌림이 존재하는데 내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이 성적 끌림을 압도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나의 내면을 살피기 때문에 1년~2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나의 무성애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나와 연인이 되는 것을 상당히 장기적(7년~언젠가)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 만큼 나에게 조심스럽고 연애감정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관계가 발전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보다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큰데, 그들은 내가 무성애자라는 걸 확신하게 되면(5~7년 정도 지내보면 거의 확신하는 것 같다) 나와 연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만 나와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평생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 믿는 듯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만남들도 결국은 '비자발적인 헤어짐'으로 이어지곤 한다.
내가 무성애와 유성애의 개념을 몰랐을 땐 저들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좋아하는 척 하는 걸까?' 생각했고, 보편적인 연애감정을 가진 듯한 사람들을 보며 '어째서 연인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보며 '어째서 마음을 숨기려 하면서 내가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 중에 나도 좋아한 사람이 있는데 대체 어떤 식으로 알아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연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이 '연인으로서의 나'일 뿐, '나라는 인간'으로는 그들에게 그다지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연애감정을 사랑의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가치기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 입장에선 공감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저러한 마음이 진심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를 좋아한 사람들은 내가 일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조금은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유성애자 혹은 로맨틱 무성애자였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에 대해 느끼는 것이 달랐을 것이고, 그에 따른 나의 반응이 다름으로써 그들의 행동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들의 관계 또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난, 날 정말 좋아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하려고 한다. 난 그들의 마음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답해 줄 수 없지만 나의 내면을 보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한 진심인-그리고 진심이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