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의 감정

이야기 2014. 2. 7. 03:55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있고, 무성애(Asexuality)에는 많은 하위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무성애자에 대해 '무성애자라면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러하지 않다면 무성애자라고 할 수 없다'고 쉽게 일반화시킬 수 없다.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Asexuality의 기본 정의인 '성적인 끌림과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뿐이지 않을까.

 

 

 무성애자의 특성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무성애자가 존재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나는 무성애를 감정결핍으로 매도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또 그 말에 공감하는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예를 들면 "멋지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봐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다."라거나 "(로맨틱한 감정으로)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친구들을 좋아하는 감정, 심지어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감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라는 식의 이야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말에 공감하는 스스로 정체화한 무성애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로맨틱한 대상에 대한 감정이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과 같다면 그는 스스로 정체화하지 못한 'romantic을 모르는 자' 즉 aromantic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감정과 같다니, 맙소사! 만약 정말 그렇게 느끼는 무성애자가 있다면 그는 그런 감정에 대한 원인을 무성애에서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이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개념이 부재한 사람이거나 엄청난 동물애호가인 것은 아닐까?

 

 

 나는 '로맨틱한 끌림이 느껴지는 사람'을 친구들보다 덜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내 마음에 대한 설명을 부정당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난 그것은 '마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종류 혹은 내가 느끼는 느낌이 상이한 것과는 별개라고 본다.

 

 그리고 인간적인 끌림이든 로맨틱한 끌림이든 그런 감정의 종류를 말하기 이전에 상대가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그런-상호 간의 교감이 가능한 복잡한- 마음을 동물이나 무생물을 좋아하는 단순한 마음과 비교하는 것은 시도할 가치없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성애자는 세상의 다수인 유성애자들이 가지는 성적 매혹이 부재하는 것뿐, 감정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감정이상자가 아니다.

 

 

 

 "무성애자는 매력적인 사람을 봐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나 노을을 보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무성애의 개념을 접하고 어디선가 이 설명을 처음 봤을 때 난 '의도는 알겠지만 뭐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비유를 써서 설명을 해놨나'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접했던 무성애에 대한 설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위의 설명을 꼽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저 설명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매력적인 사람'이란 게 '누군가에게 매력적일 수 있을 사람'인지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인지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매력적일 뿐인 사람'이라면 '아름다울 뿐인-좋아하는 것은 아닌-' 예술작품이나 풍경과 비슷하게 느껴지거나 그보다 흥미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비교 대상이 내가 '특별히 감동을 느끼는 풍경'이나 '반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느껴지는 것이 같을 리가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감정과 무생물에 대한 감정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날 문득 저 설명이 꽤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건 '시점의 전환'이었다. 나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 다시 말하면 저것은 지극히 유성애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이다. 저 설명은 무성애자는 매력적인 사람을 봐도 성적인 매혹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유성애자의 입장에서 좀 더 느끼기 쉽게' 묘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성애자는 유성애자들과 달리 매력적인/좋아하는 사람을 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마음을 느낀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보는 모습과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모습을 제 3자가 본다면 비슷하다고 느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그들의 기준에서)끌림을 느끼고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유성애자들의 시각일 뿐이다. 좋아하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내 마음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은 분명 다르다.

 

 

 이 설명에 대해 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유성애자는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성적인 매혹을 느낀다는 건가?' 우선 성적인 매혹이 어떤 느낌인지도 사실 잘 모르고, 이 의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내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렇다'인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나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한 무성애자들은 저 인상적인 문장에 갇혀서 '나는 무성애자니까 내 마음도 그러하다'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지나치게 유성애자의 시각에 맞춰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성애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성애에 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생긴다.

 

 유성애를 좀 더 알고 싶어도 무성애자의 시각에서 유성애에 대해 설명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재를 증명하는 것보다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좀 더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성애에 관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부재한 개념을 이해시킬만한 적당한 설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유성애를 전제하는 유성애중심주의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성애는 유성애 중심주의 사회에서 성적 끌림의 부재가 정서적 끌림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애써 설명해야 한다. "무성애자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성적이지 않을 뿐이다." 라고..

 

로맨틱한 끌림 속에 성적인 끌림이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는(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듯 하지만) 유성애자들은 로맨틱한 끌림만을 느껴본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 혹시 느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두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접했다. (물론 로맨틱지향과 성적지향이 일치하지 않는 유성애자도 있다.)

 

 혹자들은 무성애의 감정-특히 romantic-에 대해 유성애에는 존재하는 한 가지가 결여된 것일 뿐, 무성애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성애적인 끌림은 성적인 욕망을 제외한다. 그것만으로도 유성애자는 모르는 특별한 감정이지 않을까?

 

 어떤 이가 소금물과 소금은 먹어봤지만 물만 먹어본 적은 없다면, 그는 물이 어떤 맛인지 정확히 알까? 그가 물의 맛은 알지만 소금의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소금이 빠진 소금물을 먹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유성애자도 로맨틱한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성적인 끌림이 섞여 있다."

 이것은 무성애의 입장에서 말하는 유성애적 사랑에 관한 설명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사실은 유성애와 무성애의 차이가 성적 매혹의 유무라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차이가 생기지만 성적 매혹의 부재가 인간의 감정을 비정상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없다. 인간을 비정상적인 광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은 건 오히려 성적 매혹이 존재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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