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부재

이야기 2013. 9. 25. 03:47

 

 

 퀘스처닝 상태를 겪은 Asexual들 중 일부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중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자신이 양성애자(혹은 범성애자)인 줄 알았었다"라는 것. (로맨틱지향이 양성이나 범성인 경우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 그 외의 경우-특히 aromantic-이다.)

 

 감정의 종류에 대한 구분이 꽤 확실한 나로서는 어찌보면 무성애와 정반대쪽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개념인 양성애나 범성애를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스스로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였다.

 

 내가 젠더퀴어임을 깨닫고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나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가 이 두가지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안드로진(androgyne)과 에이젠더(Agender)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별을 정체화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 두가지 용어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이해할 뿐, 그 의미의 차이를 마음으로부터 이해할 수는 없었다.

 

 

 상대되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개념의 부재"다.

 성별을 인식하고 정체화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내가 상대되는 정체성들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무성애자들이 양성애(혹은 범성애)와 무성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가능했던 건 그들이 로맨틱이나 성애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개념들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지만.)

 여담이지만 나를 포함해서 내가 본 무성애자나 Gray-A로 추정되는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범성애와 무성애 사이에서 고민했던 무성애자들도 어쩌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부재한 개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별을 인식하는 것이다. 젠더블라인드(Gender-blind).

 젠더블라인드란 말그대로 젠더를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흔히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이것은 눈 앞에 보이는 외모를 보고도 성별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성별이나 젠더가 그 용어의 틀에서 벗어나 외모나 성격처럼 그 사람이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범성애라는 개념을 통해 이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자세한 설명이 없었음에도 단번에 그 개념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것은 나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하고.. 그래서 어떻게 설명하는 게 적절한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성별 구분이 확실한 이들에게는 젠더블라인드라는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구분을 확실히 한다는 것 또한 나에게 있어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난 사람들이 성별이란 걸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 용어를 알게 된 후에야 알았다.

 

 과거에 동성들이 나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다가왔을 때 내가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들이 동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로맨틱한 이끌림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동성이어서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은 거라고 오해했던 것 같지만 내가 느꼈던 기분은 관심없는 이성이 다가왔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성별정체성에 있어 오랫동안 퀘스처닝 상태였던 건 성별을 정체화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난 성별을 정체화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내가 여성성과 남성성이라 불리는 특성들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고, 나의 생물학적 성별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별적인 특성을 가진 신체에 조금은 불만을 느끼기도 하지만 불만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난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에이젠더(Agender)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까?' 하는 생각을 가장 오랫동안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인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젠더블라인드가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의 난 에이젠더(Agender)라는 말보다는 젠더리스(Genderless)라는 말이 나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보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어느쪽으로 말하든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개념인데 그것을 깨닫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젠더블라인드가 연정의 대상을 향한다면 범성애자(Pansexual), 자신을 향한다면 젠더리스(Genderless)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의 경우엔 젠더블라인드가 모든 사람에게 향해있다. 하지만 aromantic은 아닌 내가 스스로를 범성로맨틱(Panromantic)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알맞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romantic이라는 개념은 성정체성에 관련하여 유일하게 나에게 부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하지만 romantic이란 감정이 회색지대에 있는 나로서는 이 romantic이라는 말이 조금 멀게 느껴진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회색지대의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꽤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성적지향과 로맨틱지향, 그리고 성별정체성과 성별을 보는 눈.

 이러한 개념들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런 개념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분명 다수이다. 그 사실은 내게 나와 달라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난 그동안 아무리 의문을 가져도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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